원주 폐사지 여행2 - 법천사지
거돈사지에서 자작고개를 넘어 남한강을 따라 더 내려가면, 부론면에 자리한 법천사지(사적 제466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창건된 이 절은 고려시대에 융성기를 맞이했지만, 임진왜란의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폐사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잊혀진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조그만한 하천이 돌아 흐르는 이 폐사지 자리에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어느덧 후대의 마을로 변해갔다. 폐사지 가운데엔 마을의 중심이었을 법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여전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조그만한 우물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건물터… 너른 들판 가득했던 법천사의 흔적
지금의 법천사지는 다시금 천년 고찰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5차례에 걸쳐 시행된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와 여러 종류의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그 중 법천사가 가장 융성했던 11세기의 모습을 기준으로 정비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다만 건물지의 흔적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지만, 거돈사지의 금당터나 강당처럼 구체적인 배치나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법천사지 일대는 생각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 지금도 너른 터 곳곳에 건물지의 흔적이 산재해 있어, 이 사찰이 한때 얼마나 규모 있고 체계적으로 조성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단지 하나의 절터임을 넘어서 당시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인가 용인가"... 절터 내려다보는 지광국사탑비의 기세
법천사지 동쪽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면, 넓은 절터를 굽어보듯 서 있는 지광국사탑비가 보인다.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 해린 스님을 기리려고 사리탑이랑 같이 세운 비석이란다.
생김새를 보면 밑에 거북 받침돌이 있고, 그 위에 비석 몸체, 맨 위에는 왕관처럼 생긴 머릿돌이 얹혀 있는 전형적인 모양이다. 그런데 밑에 있는 거북이 좀 특이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거북이보다는 용 얼굴에 더 가깝게 생겼는데,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게 꽤 인상적이다.

거북 등껍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각형 칸마다 ‘왕(王)’ 자가 하나씩 새겨져 있다. 이걸 보니 나라에서 스님을 얼마나 깍듯이 대접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비석 옆면에도 구름 사이로 용 두 마리가 꿈틀대며 올라가는 모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게 참 정교해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맨 꼭대기에 얹힌 머릿돌은 네 귀퉁이가 하늘로 바짝 치켜 올라가 있고, 가운데에는 연꽃무늬가 3단으로 야무지게 새겨져 있다. 등껍질의 '왕' 자부터 옆면의 용 조각, 그리고 왕관처럼 화려한 머릿돌까지... 이 비석 하나에 지광국사를 향한 고려 왕실의 존경심을 아주 꾹꾹 눌러 담은 모양새다.






일제 반출과 폭격의 상처 딛고 다시 서다, 법천사지가 되찾은 천년의 자부심
드디어 법천사지로 돌아온 지광국사탑을 직접 보니, 그간 흘러온 세월이 참 길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탑은 고려 시대 때 아주 유명했던 지광국사 해린 스님의 사리탑인데, 조각이나 생김새가 우리나라 불교 유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라고 한다. 원주 출신인 스님이 여기서 출가해 나중엔 나라의 큰 스승인 국사 대접까지 받았으니, 그분을 기리는 이 탑도 보통 정성을 들인 게 아니다.
보통의 승탑들이 8각형인 것과 달리 이 탑은 4각형으로 만들어져서 독특하다. 바닥에는 용 발톱 같은 게 새겨져 있고, 지붕에는 불상이랑 봉황도 있다. 특히 층마다 커튼 같은 장막이 조각되어 있는데, 현장 해설사님 말을 들어보니 이게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거란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귀한 탑이 겪은 수난을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다. 1911년에 일제가 일본 오사카로 몰래 빼돌렸다가, 겨우 돌아와서도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1만 2천 조각이 났다니 말이다. 그 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서 이번에 드디어 112년 만에 고향 땅 원주로 돌아오게 된 거다. 원래 있던 터에 둘지 전시관 안에 둘지 말이 많았지만, 결국 탑을 안전하게 보존하려고 전시관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무수한 상처를 딛고 돌아온 이 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천년 전 법천사의 위세와 한 고승의 삶이 다가온다.




500억 예산과 2만 6천 점의 유물, 원주가 되찾은 천년 고찰의 자부심
1995년부터 시작된 법천사지 정비사업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2021년까지 5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동안 땅속에서 파낸 유물만 2만 6천 점이나 된다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데 정작 이 귀한 것들을 모셔둘 데가 없어서 춘천이며 충주며 여기저기 남의 집 살살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단다. 자기 집 물건을 남의 집에 맡겨둔 셈이니 원주 사람들 마음이 오죽했겠나 싶다.
그래서 유물들도 제자리에 모으고, 타향살이하던 지광국사탑도 다시 데려오자고 주민들이랑 지자체가 힘을 합쳤다. 2018년부터 전시관 한번 지어보자고 애를 쓴 끝에, 2022년 말에 드디어 ‘법천사지유적전시관’ 문을 열게 된 거다.
덕분에 112년 동안 전국을 떠돌던 지광국사탑도 마침내 고향 법천사지로 돌아와 전시관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제 위용을 뽐내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양새다. 탑 말고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물들이 전시실 곳곳에 모여 있으니, 여기만 슥 둘러봐도 천년 전 법천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무리하며
법천사지에 깃든 시간은 단지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다.
1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지광국사탑 앞에 서면, 말없이 흐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한 조용한 폐사지 터 위에 새로 들어선 법천사지유적전시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그간 유물을 지키고 되찾기 위해 힘쓴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현재 법천사지를 포함한 거돈사지, 흥법사지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도전하고 있고 각 사지는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국내 불교사와 역사유산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꼭 많은 이들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번 탐방을 마친다..
탐방을 위한 작은 팁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법천사지유적전시관)
🚗 이동 수단: 자가용 이용 추천.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고, 주변에 택시도 드문 편
⏰ 소요 시간: 전시관 관람 포함해 여유 있게 둘러보면 약 2시간~2시간 30분 소요
📷 추천 포인트: 지광국사현묘탑(전시관), 법천사지지광국사탑비, 법천사지터, 전시관 내부.
📚 전시관 관람: 입장료는 무료. 탐방 전 먼저 들러서 유물과 사찰의 구조를 이해하면 훨씬 풍성한 경험이 된다.
🥘 식당: 부론면 사무소 맞은편에 있는 부귀막국수집(비빔 막국수가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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